Sergei Rachmaninov, [Suite No. 1 for Two Pianos, Op. 5: I. Barcarolle - Allegretto], 1893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바람이 분다風立ちぬ](2013)는 비행기 설계사인 지로(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호칭으로는 '지로'를 실존했던 인물의 호칭으로는 '호리코시 지로'를 사용한다)가 비행기 설계에 관한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렇기에 소재만 놓고 본다면, 실존 인물인 비행기 설계사를 주인공의 모델로 하는 미야자키 작품은 [바람이 분다]가 아니었더라도 이미 나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행기에 관한 미야자키의 관심은 소문난 것이고, 애니메이션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에세이와 인터뷰 등을 모아놓은 책인 [출발점: 1979~1996](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대원씨아이, 2013)에서도 비행기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곤혹스러운 것은,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인 지로의 실제 모델이 다름 아닌 제로센의 설계사인 호리코시 지로라는 데 있다. 이름을 듣는 것과 동시에 전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인물. 알다시피 호리코시 지로와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는 전쟁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 전쟁이다.


애니메이션에 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꼈었다. 한편으로는, 전쟁에 관한 비판을 놓치지 않았던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이었기에 [바람이 분다]에 호리코시 지로를 모델로 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하더라도 전쟁에 관한 곱씹어 볼 만한 성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ㆍ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었기에 전쟁과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는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심란함을 느끼게 되리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에서 일본군의 승전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장면에는 일본군 폭격기/전투기가 격추당하는 이미지, 전쟁에서 패배할 것임을 예감하는 이미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나면 전쟁의 시대를 다루는 미야자키의 방식에 의문이 생기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일까? [[바람이 분다], 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떤 역사상想/像](1)에 이어 쓰는 이 글은 바로 저 의문이 생기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다.


앞선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미야자키의 [바람이 분다]를 보고 있으면 "전쟁을 (선택 가능한) 역사로 다룬다기보다는 (속박되는 것만이 가능한) 운명으로 다룬다는 느낌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에서 일종의 역사상想/像을 만들어가는 미야자키의 방법에 관하여 살펴보아야"지만 [바람이 분다]에서 내가 느낀 불편함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미야자키의 [바람이 분다]를 본 이후,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던 데에는 애니메이션에서 보게 되는 지로의 꿈과 그가 속한 (전쟁의) 시대를 표현한 미야자키의 방법을 잊기 힘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바람이 분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소년 시절의 지로가 비행기에 관한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하고 비행기에 관한 지로의 꿈을 다른 방식으로 세 번에 걸쳐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바람이 분다]는 비행기를 향한 꿈을 추구하는 지로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므로 일정한 시대에 속하여 비행기를 만들고 있는 그의 꿈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 보게 되는 지로의 꿈과 연결된 장면은 꿈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열망이 투영된 장면으로만 보기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는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지로의 네 개의 꿈 장면 중 지로와 카프로니 백작(앞으로는 '카프로니'로 통칭한다)이 만나는 세 개의 꿈 장면이 애니메이션의 전체 분량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꿈을 통해서 지로와 카프로니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가능해지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는 역사에 관한 미야자키의 관점이 지로와 카프로니의 꿈 장면을 매개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지로와의 첫 만남인 꿈 장면에서 카프로니는 "이것은 분명 꿈이고, 이 세상은 꿈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바람이 분다]에서 이 말은 그저 레토릭에 그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여기는 내 꿈속인 것 같은데"라는 카프로니의 말에 지로는 "제 꿈이기도 해요"라고 답한다), [바람이 분다]에서의 꿈 장면은 한 개인의 꿈과 한 개인이 속한 시대가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연결되어 가면서 특정한 역사상이 나타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를 본 후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보면 꿈 장면에는 모두 비행기가 등장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비행기들은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어 파괴된 이미지로 보이거나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에 유쾌하게 비행하는 이미지로 보이는 것처럼, 전쟁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고는 한다. 이를테면, 지로가 카프로니와 처음 만나는 꿈 장면에서 보게 되는 비행기는 승객을 태운 여객기와 군인과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폭격기들이다. 지로가 카프로니와 두 번째로 만나는 꿈 장면에서 일본군 폭격기는 격추되어 지로의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연속해서 이어지는 꿈 장면에서는 [붉은 돼지](1993)의 한 장면이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여객기를 타고 즐겁게 비행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나오기도 한다. 지로와 카프로니가 세 번째로 만나는 꿈 장면에서는 오로지 전쟁과의 관계에서만 비행기가 그려지기에 파괴된 제로센의 무수한 잔해들과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넘어가는 (아마도 제로센을 포함하는 전쟁에서 파괴된 여러) 비행기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꿈속에서 비행기는 멋지게 날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다. 또한 비행기가 멋지게 날거나 산산이 부서져 추락하는 이미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비행기"라는 "아름다운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역경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 파괴가 기술 부족에 따른 기관 고장이나 자연 현상 때문이 아닌 격추일 때, 이것을 꿈의 실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기에는 어딘가 불편함 지점이 남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 호리코시 지로가 비행기에 관한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바람이 분다]의 지로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람이 분다]의 꿈 장면은 자아실현의 욕망이 투영된 이미지로만 보기에는 정리되지 않는 지점이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의 꿈 장면들에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과 관계없이 즐겁고 유쾌하게 비행하는 사람들과 비행기의 이미지가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바람이 분다]의 세계에서 현실화되는 것이 가능할 지에 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로와 카프로니가 처음 만나는 꿈 장면에는, 폭격을 위해 떠나가는 이탈리아군 폭격기가 나오는 장면 다음에 "전쟁이 끝나면 이걸 만들거야"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폭격기와는 다른 모양과 용도로 만든 비행기를 카프로니가 지로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 비행기는 "폭탄 대신 손님"이 타고 있는데 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 카프로니는 "비행기는 전쟁의 수단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며,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야. 설계가 꿈을 실체로 만드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저 카프로니의 말들이 꿈속에서조차 얼마나 무력한 말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바람이 분다]의 세계는 전쟁이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세계이다.


그런데 전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표현한다고 할 때, 미야자키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바람이 분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바람이 분다]의 시공간적 배경은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이다. 전후 이전의 일본이 시공간적 배경이기에 주요 (남성) 등장인물들에게서 주기적으로 전쟁에 관한 말들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전쟁의 시대에 관한 흔적을 접하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는 '1931년 만주사변'이라거나 '1937년 중일전쟁'이라거나 '1941년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을 듣거나 보지 못한다. 또한 애니메이션이 진행되는 내내, '천황'이라는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지로가 제작을 주문한 새로운 비행기 부품의 포장지로 사용된 신문에서의 전쟁 보도 기사가 잠시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전쟁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을 접할 수 없기도 하다. 때때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지로가 미츠비시 내연기제조에 입사한 이후에 설계에 참여하거나 그가 설계에 참여한 것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대화의 대상이 되는 비행기들은 군의 요구와 관련된 비행기이며, 전체 상영 시간 절반이 1931년 이후의 시간을 다루고 있음에도, 동시대 일본에서 사용되었을 법한 특정한 전쟁을 가리키는 용어나 전쟁 이데올로기적인 표현이 [바람이 분다]의 세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1941년에 아시아ㆍ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기 전에, 15년 전쟁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1931년 이후로는 전쟁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고(쓰루미 슌스케는 [전향: 쓰루미 슌스케의 전시기 일본 정신사 강의 1931-1945](최영호 옮김, 논형, 2005)에서 "1931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한정 하더라도 '제국 일본'의 '내지'에서는 곧바로 1937년 8월에 '국민정신총동원 실시요강'이 결정되었으며 1938년 4월에 '국민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 전시 '총동원 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바람이 분다]의 시공간은 이런 역사적인 흔적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바람이 분다]에서 전쟁명 그리고 전쟁명이 가리키는 전쟁 이데올로기적인 표현을 접하기 어렵거나 아예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아시아에 관한 여러 흔적들을 보기 어렵다는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의 시대는 일본이 '제국 일본' 내지는 '광역 국가'였던 시대, '제국' 내지는 '광역'의 무대가 아시아(의 일부)였던 시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전쟁을 표현하는 관건은, 아시아를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하는가, 라는 문제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장면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미야자키에게 전쟁의 시대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역사적인 지표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거나 전쟁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시대를 드러낸다고 할 때 미야자키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인 걸까? 이 부분에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에서 지로의 꿈과 그가 속한 시대가 어떻게 연결되는가, 라는 것이다. 앞에서 나는 [바람이 분다]에서 지로가 카프로니를 만나는 꿈 장면이 중요한 이유가 "한 개인의 꿈과 한 개인이 속한 시대가 분리 불가능할 정도로 연결되어 가면서 특정한 역사상이 나타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다. 보통 지로와 카프로니가 꿈속에서 만나는 장면들은 지로가 설계사로서의 꿈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을 얻는 장면으로 설명되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들이 꿈의 실현을 위한 동력을 불어넣어주는 장면, 그 이상의 효과를 일으키는 장면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지로의 꿈속에 나타나는 비행기가 전쟁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은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이 전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인데, 미야자키는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한 개인의 꿈을 연결하는 방법을 통해 [바람이 분다]라는 애니메이션 세계의 역사상을 그려내려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야자키는 군대의 주문을 받아 지로가 비행기를 설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운데 지로의 꿈과 그가 속한 시대가 분리 불가능해지는 지점으로 애니메이션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의 초반부에 지로와 카프로니가 처음 만나는 꿈 장면의 경우, 폭격기와 전쟁의 풍경이 꿈속으로까지 들어왔더라도(지로는 이 꿈속에서 이탈리아 폭격기의 폭격을 실제로 본다. 이 장면은 소년의 단순한 망상으로 집어넣은 장면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난 지로는 아직까지는 전쟁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어지는 두 번의 꿈과 시대적인 상황이 연결되는 장면은 첫 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먼저, 선진기술을 견학하기 위해 독일로 파견된 지로가 꾸는 꿈에서, 카프로니가 은퇴 기념으로 만들 예정인 비행기를 함께 탔던 지로가 현실로 돌아올 때 애니메이션에 펼쳐진 풍경은 일장기로 뒤덮인 항구의 풍경이다. 미야자키는 이 꿈 장면의 마지막, 지로와 카프로니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줄 때 숏을 나누지 않고 하강하는 카메라에 꿈과 현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담아놓았다. 카메라의 운동에 의해, 지로와 카프로니가 비행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꿈속 장면은 꿈의 바깥에서 일장기가 휘날리는 항구의 풍경 장면과 단절 없이 연결되기에, "저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한 지로가 일장기로 뒤덮인 세계에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전쟁의 도구로 사용될 비행기 설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역사상을 그려볼 수 있게 된다(뒤이어 나오는 장면에서 지로는 "해군 1932년 시제품 함상전투기"의 설계팀장으로 임명되는데 연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대는 만주사변을 통과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미군에게 공습을 당하는 일본의 풍경과 제로센의 무덤이 연결되는 장면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부분이다. 아시아ㆍ태평양전쟁에서 미군에게 괴멸된 제로센은 지로와 카프로니가 처음으로 만났던 꿈 장면과 동일한 공간에서 비행기의 무덤을 이루고 있다. 미야자키는 이 장면에서 꿈과 시대의 시공간을 하나로 연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장면을 단절 없이 연결하는 방식을 쓰지는 않았다. 그 대신, 폭격으로 초토화 되어버린 일본을 배경으로 미군 비행기에 격추당하는 일본군 비행기가 나오는 장면과 제로센의 무덤을 배경으로 지로와 카프로니의 마지막 만남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바람이 분다] 사운드트랙의 한곡인 [여로(꿈의 왕국)旅路(夢の王国)]으로 이어놓고 있어서, 장면을 여러 컷으로 분할 해 놓았더라도 이 장면의 감정선은 단절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이 장면(의 연결)은 카프로니와 두 번째로 만난 꿈 장면 이후에 (그의 말을 따라) 지로가 설계사로서 전력을 다한 10년, 꿈의 왕국에 이르는 데 필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꿈의 왕국에 이르는 여로의 끝에서 지로는 다음과 같이 카프로니에게 말한다. "지옥인줄 알았어요."





[바람이 분다]에서 지로는 전쟁으로 꿈과 현실 모두 지옥이 되어버린 세계에서도 비행기를 향한 순수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비행기 설계사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시대임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지로의 모습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나면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어떻게 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지로에 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데, 이러한 의구심은 애니메이션의 인물과 실제 인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서 "하늘을 날겠다는 인간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야.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네"라는, 지로와 카프로니가 두 번째로 만나는 꿈 장면에 들어 있는 대사를 경유하도록 하자. 카프로니가 비행기 설계사가 된 지로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비행기가 인류의 역사에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전쟁이 있어왔고 전장은 여러 (새로운) 기술을 살육과 파괴의 도구로 선보인 무대나 다름없었다는 역사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초의 동력 비행기가 발명된 이후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탈리아군의 폭격기에 의한 리비아 공중폭격이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 국력과 기술이 있는 국가들이라면 전쟁에서 폭격기/전투기를 이용해왔음을 떠올린다면, 전쟁과 기술의 관계를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발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바람이 분다]에서 사용하는 표현은 역사가 아닌 "숙명", 선택이나 변화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역사라기보다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숙명이란, 어떤 결과가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결과가 여러 갈래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로와 같은 비행기 설계사는 그 자체로 저주받은 꿈을 꾸고 있기에 그에게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 비행기와 전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비행기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미야자키가 지로의 꿈과 그가 속한 역사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으로까지 밀고 나가는 방법으로 애니메이션을 그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의 바깥과 꿈의 안쪽 모두 전쟁터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비행기를 향한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 전투기/폭격기를 설계한다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숙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지로와 같은 비행기 설계사는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성실한 전문가로만 보일뿐 비행기에 관한 유토피아 이미지와 디스토피아 이미지 사이에서 선택할 가능성 자체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전쟁을 욕망하지 않는 그에게 유일한 잘못이 있다면 순수하게 꿈을 추구하는 한 사람의 설계사로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성실함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지로의 이러한 면모는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비행기 설계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람이 분다]에서 비행기 설계사들의 작업을 반복해서 보여줄 때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의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설계사들은 (그들의 국적이 일본ㆍ이탈리아ㆍ독일임에도) 누구도 전쟁협력이나 군국주의적인 발언을 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전쟁을 하는 국가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기/폭격기를 만드는 행위를 잠시나마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로가 새롭게 설계를 맡은 해군함상 전투기 설계를 위한 (나중에 제로센의 설계로 이어지는) "자발적 연구모임"에서는 그들이 만들 전투기가 중국 전선에서 쓰일 것임에도 이 전투기에 관한 의견을 나누면서 "적을 쳐부수기 위해 최신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지만, 모여 있는 설계사들은 전쟁의 도구로 쓰일 비행기를 설계하는 일로 고뇌하지도 않는다. 지로와 혼조가 보여주고 있듯이 [바람이 분다]에서의 설계사들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전쟁에 관한 의문이나 부정적인 내용으로만 발화되고 있으며, 또한 지로를 중심으로 하는 비행기 설계사들은 전쟁에 협력하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창의성과 성실성을 겸비한) 순수한 전문가 집단에 가깝게 그려진다. 전쟁의 시대에, 전쟁에 몰입하지 않으며, 오직 꿈의 실현을 위해 일직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러한 표현은 애니메이션에서 특정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지로와 같은 설계사들은, 빈민구제보다는 전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국가가 무기 개발에 국력을 쏟아 붓고 있기에 폭격기/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설계사들이고, 자신들이 만드는 비행기가 "살육과 파괴의 도구"로 사용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설계사들임에도, "우리는 무기 장사꾼이 아니야. 좋은 비행기를 만들고 싶을 뿐이야"라는 그들의 대사가 (원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전쟁에 협력하게 된 사람들의 기만적인 말로 들리기보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지켜내려는 순수한 사람들의 진정성 담긴 표현으로 들리게 하는 효과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로의 꿈은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속해 있는 시대가 전쟁의 시대였기에 그에게 가능한 행위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될 비행기를 설계하는 것뿐이다. 이때 역사는, 상황에 따른 맥락화가 가능한 것으로 상상되기보다 한 개인의 꿈의 방향을 결정하는 숙명적인 힘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성실함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나에게 있어 미야자키의 [바람이 분다]가 부분적으로는 매력을 느낄 만한 애니메이션임에도 결국에는 심란하고 불편한 애니메이션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행기에 관한 "아름다운 꿈"과 "저주받은 꿈"이 있다고 할 때 꿈의 현실화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오로지 "숙명"의 문제로 수렴해 버린다는 것. 왜 미야자키는 전쟁의 시대를 그리는 데 필요한 역사상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지로를 이해하려 했던 것일까? 전쟁의 시대에 전투기/폭격기를 만들어가면서 꿈을 실현하려 노력한다는 것이 아시아(인)에게는 악몽의 실현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그것도 특별한 기술로 연결되는 능력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방향으로 시대를 견뎌내기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군에서 주문한 비행기를 설계하는 지로를 두고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을 뿐"인 순수한 개인으로만 표현할 때, 여기에는 역사와 관련하여 주체에게 물을 수 있는 그 어떤 윤리적 물음의 자리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오로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는 논리와 감정 이외에 다른 것은 들어설 수가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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