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nold Schoenberg, [Piano Concerto], 1942


어떤 예술 작품의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 나아가 불편함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음에도, 그 예술 작품을 반복해서 접하게 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1868)나 R.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1941) 같은 오페라처럼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때가 대체로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바그너와 R. 슈트라우스의 음악과 같은 범위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예술 작품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있기도 하다. 작품에서 접한 무엇인가가 잘 잊혀 지지 않을 때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해당 작품으로 반복해서 돌아가고는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품이 많지는 않으며 더 정확하게는 드물다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바람이 분다風立ちぬ](2013)는 그런 의미에서 "드문" 작품에 속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미야자키의 [바람이 분다]를 여러 번 다시 보았다. 뿐만 아니라 [[꿈과 광기의 왕국]: [바람이 분다]로 연결되는 어떤 장면들]과 (미야자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의 소피의 대사를 매개삼아) ["그 사람은 겁쟁이가 나아"]라는 글을 블로그에 쓰기도 했다. 두 편의 글이 [바람이 분다]에 관한 세밀한 분석에 기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애니메이션에 관한 나름의 (비판적인) 의견을 어느 정도 개진한 것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나는 [바람이 분다] 앞에서 여전히 물러서지 못하고 있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다. 미야자키라는 위대한 애니메이터/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은퇴작이라 하더라도 [바람이 분다]는 지지하기 힘든 작품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 어려운 이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바람이 분다]에 관한 입장이 변할 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미야자키의 [바람이 분다]는, 대략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호리코시 지로(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실존인물의 호칭으로는 '호리코시 지로'를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호칭으로는 '지로'를 사용한다)의 생애를 호리 다쓰오의 소설인 [바람이 분다](남혜림 옮김, 더클래식, 2013)를 경유하여 미야자키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이다. 아시아ㆍ태평양전쟁 문턱에서 제로센을 만든 비행기 설계사를 주인공으로 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다룰 수밖에 없는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기에, [바람이 분다]를 보기 전에 미야자키가 이러한 인물과 시대적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인물과 시대를 다룰지 정말 궁금했었다. 물론 미야자키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에 관한 표현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바람이 분다]에는 그의 이전 작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신경이 쓰였던 주인공과 시대적 배경의 문제가 있었다. 미야자키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낼까,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에 접한 예술 작품 중에서 [바람이 분다]는 내가 가장 많이 떠올렸던 작품의 하나였다. 그래서였겠지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바람이 분다]와 속 편하게 이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이 애니메이션에 관한 묻어둔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남기고자 하는 글은, 앞에서 거론한 두 편의 글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바람이 분다]라는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과 잘 이별할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뭐랄까, 누군가에게는 "마침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우익 본색이 의심의 여지없이 드러난 애니메이션"이라는 문장으로 단 번에 정리할 수 있는 작품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작품이 [바람이 분다]이다.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다.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았으며 전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던 '제국일본'의 역사를 생각할 때 미야자키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준 역사상想/像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람이 분다]에 관한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애니메이션에 담겨 있는 이미지에 가능한 오래 머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비판을 위해서라도)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바람이 분다]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매개삼아 조금은 우회하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간 간격을 두고 [바람이 분다]를 반복해서 볼 때마다 머리에 각인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용의 문제를 무시할 수만 있다면, 이 애니메이션에는 내가 좋아할 만한 이미지가 담겨 있으며 아름답다고 느낀 이미지도 여럿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로 하여금 애니메이션에 머물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싫더라도 역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들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바람이 분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의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일본군 비행기를 보여주는 미야자키의 방법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물론 [바람이 분다]는 호로코시 지로를 모델로 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이기에 이 애니메이션에 비행기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인상적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에서의 일본군 비행기는 그것이 전쟁과 관련된 장면에 등장하는 것일 때는 예외 없이 특정한 형태를 보여준다. 전쟁과 관련된 장면에 일본군 비행기가 나올 때 그 비행기는 모두 파괴되어 추락한 형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람이 분다]는 지로가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인 애니메이션이기에 전쟁에서 파괴되고 추락하는 일본군 비행기의 이미지를 피해가거나 약화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바람이 분다]는 비행기 설계사라는 꿈을 정하는 부분과 비행기 설계사로서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기도 하다). 미야자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파괴되고 추락한 일본군 비행기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세 장면에 불과하지만 모두 인상적으로 연출되어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면 잊기 어렵게 되어있다.





해당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미츠비시 내연기제조三菱内燃機製造에 입사한 지로가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파견된 시퀀스에서 나오는 꿈 장면이다. 독일에 파견된 지로는 일본에서 수입하여 폭격기로 개조할 융커스의 비행기 등을 견학한 후 호텔에서 동료인 혼조와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혼조와 밖에 나가 산책을 하던 길가에서 반체제 운동가를 체포하려는 독일 경찰과 마주치는데, 여기에서 미야자키는 경찰의 반체제 운동가 체포현장을 잠시 보여준 후, 아무런 설명 없이 장면을 전환해서는 비행기 잔해가 놓여있는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가는 지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는 계속 걸어가고 그가 가는 방향에는 멈춰서는 기차가 보인다. 이때 지로는 기차가 있는 방향으로 조금 걷다 뒤를 돌아보는데 이러한 그에게 호응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는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일본군 폭격기가 나타난다. 이 폭격기는 융커스에서 수입하여 폭격기로 개조할 것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비행기를 개조한 것으로 지로의 눈앞에서 완전하게 폭파되어 버린다. 그러고 나면 지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는 얼굴로 가던 길을 가고, 혼조가 지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숏이 바뀌면서 호텔에서 잠들어 있는 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다른 하나는, 지로의 동료인 혼조가 제로센 제조 현장을 보러 와서는 폭격기로 개조될 비행기에 관하여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지로의 신작 비행기 제조 상황을 보러 온 혼조는, 군의 요구로 자신이 폭격기로 개조해야할 비행기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게 될 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그런 가운데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전쟁에 관한 것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미야자키는, 지로와 혼조의 폭격기로 개조될 비행기의 설계에 관한 대화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관한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 사이에, 혼조가 군으로부터 개조할 것을 요구받은 비행기로 보이는 일본군 폭격기가 중국 영토를 폭격하기 위해 날아가다 국민당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당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은, 제로센이 완성되어 시험 비행이 성공하고 난 이후의 장면이다. 설계와 제조가 끝나 시험 비행에 나선 제로센은 멋지게 하늘을 비행한다. 이 장면에서의 제로센은 마치 지로와 나오코의 사랑을 중계했던 종이비행기처럼 그렇게 비행을 한다. 그러나 시험 비행 성공 다음에 바로 이어 나오는 장면은 미군의 폭격으로 일본이 초토화 되는 가운데 미군 폭격기에 격추당하는 일본군 전투기의 이미지와 산산이 부수어져 여기저기 쌓여있는 제로센의 이미지가 담겨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지로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비행기의 무덤이 되어버린 제로센의 잔해 사이를 걸어간다.


[바람이 분다]는 전쟁의 시대와 관련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전쟁 장면은 얼마 되지 않는데, 관동대지진 시퀀스에서 지진으로 인한 혼란상을 시간을 들여가며 보여준 것에 비하면 전쟁 장면에는 그만큼의 시간을 들인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게다가 일본 본토 밖에서 전쟁을 벌이는 육군 보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침략 전쟁의 참상이라 할 만한 것을 사실상 전혀 볼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보기 힘든 이미지의 하나는 전쟁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은 육체이다.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를 작업하면서 '제국일본'의 세력권에서 전쟁으로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한 육체를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단순한 비교는 피해야겠지만, [모노노케 히메](1997)에서 아시타카가 쏜 화살에 팔 전체가 잘려나가는 등의 신체 손상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바람이 분다]보다 [모노노케 히메]가 더 실제 전쟁에 가까운 이미지가 들어 있는 애니메이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대신 [바람이 분다]에서 보게 되는 전쟁을 직접 다룬 장면들은 모두 격추당한 일본군 폭격기/전투기와 관계된 것들이다. 이 장면들을 처음 보았을 때 즉각적으로 받았던 인상은, 적어도 이 장면들에서의 일본군 폭격기/전투기들은 격추하기 위해 존재한다기보다는 차라리 격추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상승보다는 하강에 이끌리는 비행기들. 두 가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위에서 이야기한 이 장면들에서 보이는 일본군 폭격기/전투기들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상태에서 파괴되고 추락한다는 것이다. 융커스에서 수입하여 폭격기로 개조하려는 비행기이든 지로가 설계한 제로센이든 [바람이 분다]에서 이 비행기들의 멋진 활약상 같은 것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시점에서 이 비행기들은, 이미 공격받아 추락하고 있거나, 곧바로 공격받아 파괴되거나, 이미 파괴되어 잔해만 남아있다. 미야자키는 [바람이 분다]에서 전쟁을 하는 일본군의 활약에 관심이 없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이야기한 장면들에서의 일본군 폭격기/전투기들의 파괴와 추락은 시간을 앞당기거나 시간 간격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세 개의 장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면에서의 비행기 추락은 모두 애니메이션의 현재 시점에서는 만들어지지 않아서 실전에 배치될 수도 없었으며 그렇기에 공격을 받아 부서질 수도 없는 비행기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첫 번째 장면에서의 일본군 폭격기는 독일로 파견된 지로가 융커스에서 폭격기로 개조할 비행기를 견학한 후 호텔에 돌아와 꾸었던 꿈에 등장한 것이므로 아직 일본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던 상황이었으며, 두 번째 장면에 나오는 격추당하는 일본군 폭격기는 안전성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폭격기로 개조하려는 군의 요구를 비판하는 혼조와 지로의 대화 사이에 등장하는 것이므로 역시 아직 개조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야자키는, 애니메이션의 현재 시점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폭격기들을 완성형의 형태로 만든 다음 파괴되어 추락하는 이미지로 집어넣은 것이다. 세 번째 장면은 장면들의 시간 간격을 압축한 것에 해당하는데, 제로센이 시험 비행에 성공한 후 곧이어 보게 되는 전쟁 종결이 다가오던 시기의 장면으로 여기에서는 미군기에 격추당하는 일본군 전투기와 완전하게 부서져버린 제로센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바람이 분다]에서 시험 비행 성공 장면과 전쟁 종결이 다가오는 장면은 6년이라는 시간을 간격 없이 바로 연결한 것인데, 우리는 이렇게 연결된 장면에서 시험 비행에 성공한 제로센이 실전에 배치되고 출격을 해서 전쟁을 수행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을 보지 못한다.


이 세 개의 장면들에서 격추당하는 일본군 폭격기/전투기들은 군에 속하는 것이므로 기체에는 당연히 일장기가 그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가 파괴되어 있거나 추락할 때 우리가 보게 되는 이미지에는 일장기가 그려진 기체의 일부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첫 번째 장면에서 불길에 휩싸인 폭격기가 지로 곁에 추락할 때 부러진 날개에 그려진 일장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숏을 집어넣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바람이 분다]의 이 장면들은, 미야자키가 전쟁에 관한 비판을 일본의 몰락을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다시 말해 일본군 폭격기/전투기의 파괴와 추락이라는 이미지로 일본의 몰락을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전쟁에 관한 비판을 수행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람이 분다]에서 비행기를 만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로(와 같은 비행기 설계사)의 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력을 쏟아 부어서라도 (폭격기/전투기의 형태로) 이루어야하는 국가의 꿈이기도 하다. [바람이 분다]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일본을 (산업혁명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여) 새로운 금속문명에 진입하지 못한 국가이면서("우리는 기술의 기초가 없단 말이지? (…) 그래서는 맞출 수 없어, 우리는 20년이나 뒤쳐져 있단 말이야!") 가난한 아이들이 넘쳐남에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전쟁 준비를 위한 비행기 개발에 몰두하는 국가로 나오는데("가난한 나라가 비행기를 원하기에 우리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거야."),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바람이 분다]에서의 일본은 기술력도 경제력도 없으면서 인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데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나 생산하려는 국가였던 것이고, 이러한 국가가 만들고자 했던 것이 다름 아닌 폭격기/전투기였던 셈이다.


전쟁에서의 일본군 폭격기/전투기의 활약상을 이미지로 만들지 않고 반대로 격추된 폭격기/전투기를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수단을 통해 파멸로 나아간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그러니까 일본군 폭격기/전투기의 이미지로 표현된 미야자키의 역사상을 전쟁의 시대에 관한 그 나름의 비판적 논평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멈추어도 괜찮은 것일까? [바람이 분다]는, 침략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낸 일본에 관한 비판적 논평이 담겨 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불편함 마음이 생기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분명 미야자키는 자신의 애니메이션들에서 일관되게 비판해 왔던 것처럼 [바람이 분다]에서도 전쟁을 비판하고 있음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이라는 사건을 일종의 탈역사적인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전쟁을 (선택 가능한) 역사로 다룬다기보다는 (속박되는 것만이 가능한) 운명으로 다룬다는 느낌에서 오는 불편함. 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려면 [바람이 분다]에서 일종의 역사상想/像을 만들어가는 미야자키의 방법에 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니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 부분에 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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