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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그리고 피아졸라의 음악.

무한한 연습 2013. 6. 29. 03:08

 

 

— 한 달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에는 거의 모두 음악과 함께 하고는 했다. 집안 문제로 신경을 써야할 일들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어서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았고, 그래서 미약하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 음악에 의지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다른 예술들에도 기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문학이든,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하여튼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의지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상황과 연결되는 문제들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예술 작품에 의지 하고 싶을 때, 음악을 제외한 다른 예술들은 눈을 뜨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한계가 느껴지고는 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문제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관여하고 싶지 않음에도 단절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냥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을 때, 저 예술들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은 그렇지 않다. 완전하게는 불가능하겠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분리해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로 예술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을 때, 결국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은 음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많이 우울하더라도, 무언가를 보는 것으로 그 시간을 버티려는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W. 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와 쓰시마 유코津島佑子의 소설에서,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와 곤 사토시今敏의 애니메이션에서, 김혜린과 제프 르미어Jeff Lemire의 만화에서, 허우샤오시엔侯孝賢과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영화에서, 그러니까 읽고 보는 것들에서 다른 것으로는 바라기 어려운 위안을 얻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작가와 작품에 관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읽고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눈을 맞추고 있는 작품 앞에서 가끔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울을 밀어내려 들은 음악들에서 가장 많이 곁에 둔 것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음악이었다. 이 음악 저 음악을 전전했지만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음악은 피아졸라의 것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피아졸라의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받았던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슬픈 음색(피아졸라는 반도네온을 아코디언과 대조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아코디언은 신맛이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악기다. 반면 반도네온은 벨벳 같은 소리, 종교적인 소리를 낸다. 슬픈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탱고라는 음악에 들어있는 카모라camorra(싸우려는 경향)적인 요소(피아졸라는 탱고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맥락에 상관없이 탱고는 반드시 카모라를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그 뿌리가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피아졸라의 음악을 들었던 최근의 나의 심정에 제대로 들어맞는 음악적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슬픔과 갈등이 녹아있는 음악. 그러므로 피아졸라의 음악에 내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피아졸라의 앨범을, 그가 '옥텟'을 결성하여 탱고 음악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89년에 그의 마지막 밴드인 '섹스텟'을 해체한 후 연주활동을 마감하게 되는 1990년까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듣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피아졸라는 자신의 곡을 연주할 때 필요에 따라 편곡을 다르게 해서 연주하고는 했다. 이를테면 [Libertango]는 1974년에 Tropical Music에서 나온 [Libertango]에 수록된 버전과 Messidor에서 1983년에 나온 [The Vienna Concert]에 수록된 버전이 다른데 이런 경향은 [Adiós Nonino]와 같은 곡이거나 피아졸라가 연주 프로그램에 자주 올리는 곡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특정 시기의 피아졸라의 음악만 들으면 같은 곡이라도 다른 버전으로 연주된 음악은 잘 안 듣게 될 수도 있다). 대학생 때 피아졸라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이래 종종 그의 음악을 들었지만 내가 자주 들은 그의 음악은 페르난도 수아레스 파스Fernando Suarez Paz(바이올린), 오스카 로페스 루이스Oscar Lopez Ruiz(기타)/Horacio Malvicino호라시오 말비시노(기타), 엑토르 콘솔레Hector Console(베이스), 파블로 지글러Pablo Ziegler(피아노) 그리고 피아졸라(반도네온)로 이루어진 1978년에서 1988년까지 활동한 '두번째 퀸텟'Quinteto Tango Nuevo 시기에 나온 앨범들이었다. 피아졸라가 '첫 번째 퀸텟'과 '노넷' 그리고 '섹스텟'으로 활동했던 시기에 나온 앨범들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손은 '두번째 퀸텟' 시기의 앨범에 더 많이 갔었고 특히나 피아졸라가 탱고와 락음악의 접속을 시도했(으며 "반도네온의 불레즈"라는 극찬을 받기까지 했)던 "전자 피아졸라"(이 표현은 1976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있었던 피아졸라의 공연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사용된 것이다) 시기의 음악은 잘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시기에 작곡된 음악이든, 어떤 연주 형태로 나온 앨범이든, 피아졸라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퀸텟' 시기에 프로듀서 킵 한라한Kip Hanrahan과 함께 한 세 장의 스튜디오 앨범([Tango: Zero Hour](american clavé, 1986), [The Rough Dancer And The Cyclical Night](american clavé, 1987)] 그리고 [La Camorra: La Provocación Apasionada](american clavé, 1989))과 역시 '두번째 퀸텟' 시기에 있었던 공연 실황을 앨범으로 만든 [Astor Piazzolla en el Teatro Colón](Antología, 1983)나 [Astor Piazzolla: The Central Park Concert](Chesky Record, 1987)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 나의 피아졸라 음악 듣기는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다른 음악가들의 음악을 듣는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위안을 얻기 위해 듣는 음악은 종종 다른 음악을 부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랜만에 피아졸라의 음악에 흠뻑 빠지기까지 했으니 피아졸라라는 이름으로 여러 음악가들의 음악을 횡단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여기에 피아졸라의 음악으로 나를 위로해준 음악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앨범을 남겨보고 싶다.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크레머라타 발티카KremerATABaltica)가 낸 일련의 피아졸라 앨범은 내가 처음으로 피아졸라의 음악을 들었던 날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크레머는 [Hommage à Piazzolla](Nonesuch, 1997)를 시작으로 피아졸라의 '탱고 오페라'Tango Operita인 [María de Buenos Aires](Teldec, 1998)를 포함하는 여러 장의 피아졸라 앨범을 냈는데 나에게 피아졸라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준 음악가가 다름 아닌 크레머였다. 그의 앨범은 피아졸라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여전히 나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요-요마Yo-Yo Ma의 [Soul Of The Tango](SONY, 1997)는 앞에 이야기한 크레머의 [Hommage à Piazzolla]와 함께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탱고 앨범일 것 같은데 유명한 첼로리스트인 요-요 마의 연주로 탱고를 듣는 것도 좋지만 [Soul Of The Tango]에 참여해서 요-요 마와 함께 연주하는 다른 음악가들의 뛰어난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앨범이 갖고 있는 매력일 것이다. 거의 모든 앨범에서 탄탄한 연주와 참신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있는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은 피아졸라와 함께 녹음한 탱고 앨범인 [Five Tango Sensations](Nonesuch, 1991)에서도 주옥같은 연주를 들려준다. 이 앨범에 관한 유일한 불만은 음악 수록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일 뿐이다. 요셉 폰스Josep Pons가 피아졸라의 음악을 재해석한 앨범인 [Concerto pour Bandonéon](harmonia mundi FRANCE, 1996)은 내가 크레머의 앨범으로 피아졸라의 음악을 처음 접한 후에 뒤이어서 듣게 된 앨범이다. 나는 폰스의 [Concerto pour Bandonéon]을 듣고 난 다음에야 피아졸라가 연주한 앨범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는데 폰스의 앨범은 다시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앨범이다. 살바토레 아카르도Salvatore Accardo는 클래식음악계에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바이올린리스트로 그가 연주한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의 바이올린 음악이 수록된 앨범은 최고의 명연에 속하는 것인데, 아카르도가 2002년에 fonè에서 낸 3장의 피아졸라 앨범([Adiós Nonino], [Le Grand Tango] 그리고 [Oblivion])도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는 피아졸라가 곡을 헌정한 음악가에 속한다. 피아졸라는 [Le Grand Tango]를 이 위대한 첼리스트에게 헌정했으며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음악을 피아졸라와 함께 연습을 해서 연주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녹음으로 남기기도 했다. 2008년에 나온 로스트로포비치의 EMI 녹음 전집인 [Mstislav Rostropovich: The Complete EMI Recordings]을 포함하는 몇 개의 앨범에서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Le Grand Tango]를 들을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음악가들이 클래식음악가이거나 클래식음악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음악가들이면서 피아졸라의 음악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음악가들이라면, 이어서 이야기하려는 음악가들은 탱고음악가이거나 재즈와 월드뮤직음악가이면서 피아졸라의 음악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음악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샤르 갈리아노Richard Galliano는 현존하는 최고의 탱고 음악가 중 한명이자 아코디온 연주의 거장이기도 한데 그의 [Piazzolla Forever](DREYFUS, 2003)와 [Tango Forever Live](milan, 2005)는 내가 사랑하는 피아졸라에 관한 앨범들이면서 이번에 들을 때도 큰 위안을 안겨준 앨범들이다(갈리아노는 탱고이외의 음악 연주에도 탁월한 면모를 보이는 음악가여서 최근에는 클래식 음반회사인 Deutsche Grammophon과 계약을 맺고 두 장의 수준 높은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니노 로타Nino Rota의 음악을 재해석한 [Richard Galliano: Nino Rota](DG, 2011)는 감동적인 음악으로 가득한 앨범이다). 파블로 지글러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아졸라의 '두번째 퀸텟'의 멤버였고 그 자신이 뛰어난 탱고 음악가이기도 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Amsterdam Meets New Tango](Zoho Music, 2013)와 같은 인상적인 탱고 앨범을 내놓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알 디 메올라Al Di Meola는 피아졸라의 음악에 있어서도 발군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폭풍처럼 몰아치는 [Libertango]를 원하는 사람은 [World Sinfonia/The Grande Passion](Telarc, 2000)에 들어 있는 알 디 메올라의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어야하며 그의 다른 피아졸라 앨범인 [Di Meola Plays Piazzolla](BLUEMOON, 1996)도 피아졸라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앨범일 것이다. 세르지오 아사드 &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Sérgio Assad & Odair Assad는 피아졸라가 살아있던 시절에 그의 기타 음악에 관한 탁월한 연주를 남겼을 정도로 피아졸라의 음악에 정통한 음악가들인데 이 형제의 [Play Piazzolla](Nonesuch, 2001)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앨범 중에 하나이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아졸라의 '두번째 퀸텟'에서 바이올린을 맡았으며 앞에 소개한 [Play Piazzolla]에서도 두 곡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페르난도 수아레스 파스와 함께 한 앨범인 [Live in Brussels](GHA, 2004)에 수록된 피아졸라 음악에서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아사드 형제는 탱고, 더 넓게는 라틴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클래식음악에도 조예가 있어서 그들의 바로크 음악 앨범인 [Play Rameau, Scarlatti, Couperin, Bach](Nonesuch, 1993)에서도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다). 재즈계의 거장이자 비브라폰 연주의 대가인 개리 버튼Gary Burton은 피아졸라와 함께 여러 차례 공연을 했을 정도로 음악적인 교감을 나눈 음악가인데 피아졸라의 '두번째 퀸텟' 멤버들과 함께 연주한 그의 [Libertango: The Music of Astor Piazzolla](Concord, 2000)는 피아졸라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에'할 수밖에 없는 앨범이다. 마지막으로, 오스발도 풀리에세Osvaldo Pugliese는 탱고의 역사에서 피아졸라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가 중 한 명인데 그에 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마리아 수사나 마치María Susana Azzi와 사이먼 콜리어Simon Collier가 함께 쓴 평전인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2004)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아졸라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뮤지션 중에서 밴드 리더 오스발도 풀리에세(개인적으로는 비교적 교류가 없었다)를 늘 찬미했다. 그는 1968년에 밴드 리더 중에서 풀리에세만이 "자신을 능가할 만한 수준 있는 뮤지션"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피아졸라와 탱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풀리에세의 음악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 위에 올린 음악은 피아졸라의 [Oblivion]으로 그가 자신의 밴드와 함께 한 연주이다. 아마도 피아졸라의 음악을 직접 들은 적이 없거나 심지어 그의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 정도는 이 음악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Oblivion]은 그만큼 유명한 곡인데 본래는 이탈리아의 영화감독인 마르코 벨로키오Marco Bellocchio가 감독한 [엔리코 4세Enrico IV](1984)의 사운드트랙으로 작곡된 것이다(벨로키오는 1960년대에 [주머니 속의 주먹Pugni in Tasca](1965)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하면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와 함께 이탈리아 영화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감독이고 오늘날에도 특유의 (정치)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감독이다. 한국에서는 그의 영화를 볼 기회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의 21세기 작품 중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내 어머니의 미소L'ora di religione](2002), [승리Vincere](2009) 그리고 [잠자는 미녀Bella addormentata](2012)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개된 영화들인데 세 편 모두 매우 인상적인 (정치)영화들이다. DVD로는 1978년 이탈리아에서 '붉은 여단'Le Brigate Rosse에 의해 일어난 '알도 모로Aldo Moro 납치 살해사건'을 다루는 영화인 [굿모닝, 나잇Buongiorno, notte](2003)이 국내에 나와 있는데 이 영화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극작가인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엔리코 4세](장지연 옮김, 본북스, 2011)를 원작으로 하는 벨로키오의 [엔리코 4세]는 내가 그의 21세기 (정치)영화들을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것에 비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였고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 관한 나의 인상은 특별하게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피아졸라의 음악은 잊기 어려운데 [Oblivion]을 포함하는 [엔리코 4세]의 사운드트랙은 이 영화의 감독인 벨로키오도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Youtube 링크의 [Oblivion]은 위에 소개한 아카르도의 세 개의 피아졸라 앨범 중 [Oblivion]에 수록된 연주이다. 아카르도는 [Oblivion]의 첫 번째 트랙에 수록된 곡인 [Oblivion]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어 이 곡이 본래 가지고 있는 슬픈 정서를 잘 살리면서도 품격 있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아카르도는 이 앨범에서 피아졸라의 음악을 탱고음악일 뿐만 아니라 최상의 클래식 현대 음악으로도 생각을 하며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이 모두 그렇듯이, 같은 계열의 음악가들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계열의 음악가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는 했는데 여기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클래식음악가들도 포함된다. 아카르도는 [Oblivion] 북클릿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피아졸라를 벨라 바르톡Béla Bartók과 조지 거쉰George Gershwin과 같은 20세기 클래식음악 작곡가나 클래식음악과 함께 다른 계열의 음악도 작곡했던 작곡가들에 비유를 하고 있다. 피아졸라가 탱고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중요한 음악적 자원으로 생각했던 것이 클래식음악과 재즈였고 또한 바르톡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가 피아졸라의 음악적 영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카르도와 같은 클래식음악가들이 피아졸라를 현대클래식음악사의 뛰어난 작곡가들에 비유하며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아카르도는 196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클럽인 미켈란젤로에서 피아졸라의 연주를 직접 듣기도 했었다). 피아졸라는 어렸을 때부터 긴 시간동안 클래식음악 교육을 받았기에 클래식 음악의 여러 양식에 익숙했고(이를테면 그의 작품 중 협주곡의 형식으로 작곡된 음악이나 푸가fuga의 형식으로 작곡된 음악을 생각해보라), 피아졸라가 탱고를 그만두고 클래식음악가가 되려는 생각을 한동안 매우 진지하게 했을 때에도 그의 생각을 바꾸어 탱고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음악적인 도움을 준 사람도 프랑스 유학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였다(불랑제는 그녀 자신이 뛰어난 음악가이자 그녀에게 배운 음악가들만으로도 20세기 클래식음악에 관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여러 음악가들을 가르친 탁월한 음악교사였다). 피아졸라에게 클래식음악은 그의 삶에 언제나 함께 했던 음악이었던 만큼 아카르도가 클래식음악의 관점에서 그의 음악에 접근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아래 보이는 Youtube 링크는 피아졸라의 [Decarissimo]이다. 위에 올린 음악들과는 다르게 [Oblivion]의 다른 연주 버전이 아닌, [Decarissimo]를 남기는 이유는 속도감 있으면서도 조금은 흥겨운 음악으로 포스트를 마무리 짓고 싶기 때문이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을 위험할 정도의 감상주의에 젖게 만들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Oblivion]은 이 음악이 갖고 있는 노스탤지어적인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을 때로는 음악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과도한 감상에 젖게 만들고는 한다. 그래서 우울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Oblivion]과 같은 피아졸라의 음악은, 한편으로는 큰 위안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우울할 수만은 없으니까 다른 음악을 듣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기분을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피아졸라의 [Decarissimo]는 나에게 필요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흥겨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음악이면서도 어떤 대목에서 느껴지고는 하는 슬픈 느낌은, 내 마음에 있는 슬픈 감정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올리는 [Decarissimo]는 아사드 형제의 [Play Piazzolla]에 수록된 연주로 음악을 듣는 나에게 애틋함을 전해준다.

 

 

 

덧붙임: 피아졸라의 음악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그의 '두번째 퀸텟' 시기의 스튜디오 녹음을 남기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워서 한 곡만 더 남기려 한다. 아래 보이는 Youtube 링크는 (위에서 이야기한) 피아졸라의 [La Camorra: La Provocación Apasionada]에 수록된 [La Camorra II]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La Camorra]는 모두 I-II-III으로 이루어져 있는 곡으로 내가 즐겨 듣는 부분은 피아졸라 특유의 불협화음과 템포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복합적인 구성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La Camorra II]이다. '두번째 퀸텟' 시기의 피아졸라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번째 퀸텟'으로 10년을 활동했음에도 스튜디오 녹음으로 나온 앨범은 얼마 안 된다. [La Camorra: La Provocación Apasionada]는 그 얼마 안 되는 스튜디오 녹음으로, 개인적으로는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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