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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 Fauré, [Barcarolle No 1 in A minor, Op 26], 1880.

 

 

— 시이나 카루호椎名軽穂의 [너에게 닿기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07~)을 뒤늦게 보았다. 최신권인 18권과 바로 앞권인 17권을 말이다. [너에게 닿기를]은 내가 즐겁게 보고 있는 만화 중 하나인데 때마다 이 만화의 신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너에게 닿기를]이 얼마나 판매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본에서는 작년에만 403만 9715부가 판매되어 2012년 만화 판매순위에 6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일본에서 작년 한 해에 [너에게 닿기를]보다 많이 판매된 만화는 (무려 2346만 4866부가 판매된) 오다 에이이치로尾田栄一郎의 [원-피스], 후지마키 타다토시藤巻忠俊의 [쿠로코의 농구], 키시모토 마사시岸本斉史의 [나루토], 코야마 추야小山宙哉의 [우주형제] 그리고 마시마 히로真島ヒロ의 [페어리 테일]이 있을 뿐인데, 이것은 토가시 요시히로冨樫義博의 [헌터x헌터], 오바 츠구미大場つぐみ와 오바타 타케시小畑健의 [바쿠만], 아라카와 히로무荒川弘의 [은수저], 쿠보 타이토久保帶人의 [블리치], 소라치 히데아키空知英秋의 [은혼], 시마부쿠로 미츠토시島袋光年의 [토리코] 그리고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의 [진격의 거인]보다도 많이 팔렸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일본'순정만화'계 뿐만 아니라 일본만화계 전체에서도 [너에게 닿기를]은 인기작인 셈이다.

 

사실 작년 가을에 [너에게 닿기를] 16권을 보았을 때, 나는 한국어판으로는 나오지도 않았던 이 만화의 17권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일본에서는 작년 9월에 17권이 나왔었는데 기다리기 너무 힘들면 일본어판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너에게 닿기를]의 17권이 결정적인 한 권이 될 것임은 이 만화를 꾸준히 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에게 닿기를]의 주인공인 쿠로누마 사와코와 카제하야 쇼타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인데 이 둘은 학교의 (일본 서브컬처에서 무수한 사건이 일어나는 행사기간인) 문화제 기간에 서로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고 연인이 된다. 그런데 연인이 되고난 이후에 가게 된 수학여행에서 스킨십과 관련된 카제하야의 돌발적인 행동이 있고 난 다음, 이 둘 사이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원인은 카제하야에게 있지만 그는 쿠로누마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어색하게 대하고, 쿠로누마는 수학여행 이후에 자신을 대하는 카제하야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가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기에 관계 개선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관계는 점점 더 어색해지기만 하고 급기야 16권이 끝나갈 무렵에는 한계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너에게 닿기를]의 17권은 쿠로누마와 카제하야 사이에서 깊어져만 가는 갈등의 결말을 어떤 방향으로든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서 쿠로누마와 카제하야는 시종일관 어색한 시간을 보낸다([너에게 닿기를]의 17권과 18권은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크리스마스 저녁에 끝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태로운 관계를 돌파할만한 방법을 찾지 못하던 쿠로누마와 카제하야는 파티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후 둘만 남는다. 관계의 개선을 위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든 것은 카제하야가 아닌 쿠로누마이다. 그리고 18권으로 넘어오면, 카제하야는 왜 자신이 쿠로누마를 한동안 어색하게 대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애정 어린 고백을 하고, 카제하야의 진솔한 고백을 들은 쿠로누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다. 말 그대로 해피엔딩. 현실이든 만화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별을 목격하는 것은 슬픈 일이기에 쿠로누마와 카제하야가 헤어지지 않게 된 것은 [너에게 닿기를]의 애독자인 나에게도 잘 된 일이다. 그러고 보면 [너에게 닿기를] 17권의 표지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이 둘의 갈등이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잠시나마 했었다. [너에게 닿기를] 17권의 표지는 주인공 연인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그림인데, 17권을 제외하면 주인공 연인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그림은 지금까지 두 번이 쓰였고 그 그림들이 표지인 만화의 내용은 모두 애틋함과 설레임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연인이 될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1권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연인이 되는 10권. 그러므로 [너에게 닿기를] 17권의 표지에서 쿠로누마와 카제하야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그림을 본 후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만화의 내용으로 들어간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 내가 모든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정만화'라는 장르 자체에는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다(지금 남기는 글에서 말하는 '순정만화'는 대부분 [너에게 닿기를]과 같은 일본의 '소녀만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맥락에 따라서는 '순정만화'가 아닌 '소녀만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편의상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모두 '순정만화'로 통칭하도록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 [너에게 닿기를]의 17권과 18권을 보면서도 '순정만화'를 향한 애정을 새삼 확인했지만, '순정만화' 이외에 다른 계열에 속하는 만화들, 이를테면 에마뉘엘 기베르Emmanuel Guibert의 [앨런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차예슬·장재경·이하규 옮김, 휴머니스트, 2013)이나 우메즈 카즈오楳図かずお의 [표류교실](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12)과 같은 뛰어난 만화들을 [너에게 닿기를]과 함께 보면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장르는 결국 '순정만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너에게 닿기를]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여러 작가의 '순정만화'를 연이어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코다마 유키小玉ユキ의 [언덕길의 아폴론](이정원 옮김, 애니북스, 2010~) 5권과 6권, 모리 카오루森薰의 [신부 이야기](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2010~) 5권, 우니타 유미宇仁田ゆみ의 [토끼 드롭스](양수현 옮김, 애니북스, 2007~2012) 9권, 강경옥의 [설희](팝툰, 2008~) 7권과 8권, 스에츠구 유키末次由紀의 [치하야후루](서현아 옮김, 대원씨아이, 2009~) 15권부터 18권 그리고 하기오 모토萩尾望都의 [포의 일족](정은서 옮김, 세미콜론, 2013~) 1권에서도 나는 큰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다른 장르의 만화보다 '순정만화'에 더 깊은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 인물들과의 관계, 특히나 연정戀情으로 연결되는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있어 '순정만화' 만큼 내 마음을 울린 만화의 장르는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나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만화에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기법이 일본만화사의 처음부터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긴 시간 많은 만화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기법을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순정만화'를 그린 전후 일본만화사의 여성작가들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1970년대를 전후로 일본만화계에 등장한 여성작가들, 곧 하기오 모토, 오시마 유미코大岛弓子, 타케미야 케이코竹宫惠子로 대표되는 이른바 (쇼와 24년경, 그러니까 1949년경에 태어난) '24년조24年組' 또는 '꽃의 24년조花の24年組'라 불렸던 만화가들은 일본만화사에서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내면을 발견한 작가들로 이야기된다. 물론 '24년조' 이전의 만화가들이라고 해서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내면의 심리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또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개봉한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의 극장 애니메이션 [RE: CYBORG 009](2012)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만화가인 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는 [만화가입문マンガ家入門](秋田書店, 1965/1998)이라는 책에서 만화에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기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시노모리를 포함하는 '24년조' 이전의 만화가들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말 칸/풍선 밖의 언어의 배치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할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시도를 해보기는 하지만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이시노모리라는 이 뛰어난 만화가도 [만화가입문]에서 말 칸/풍선 밖의 언어의 배치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실험을 해보았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칸의 배치를 자유롭게 구성해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만화 기법도 '24년조' 만화가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일본만화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24년조' 여성작가들은 기존의 '소년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표현 기법으로 1970년대 일본만화계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데, 하기오가 [11월의 김나지움11月のギムナジウム](小学館, 1971, [별책소녀 코믹別冊少女コミック]에 발표)에서 말 칸/풍선 바깥에서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던 것이나 오시마가 [바다에 있는 것은...海にいるのは...](小学館, 1974, [별책소녀 코믹別冊少女コミック]에 발표)에서 기존의 만화에서 보이던 컷의 배분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컷의 배분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했던 것 등은 기존의 '소년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감수성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순간이면서 '순정만화'의 독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할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연이어서 '순정만화'를 보면서, 나는 일본만화사의 몇 대목을 떠올려보곤 했다. 내가 위에 나열한 '순정만화' 중 하기오의 [포의 일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21세기에 들어 연재를 시작한 만화들이다. 그러나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가 [아톰의 명제: 테즈카 오사무와 전후 만화의 주제アトムの命題: 手塚治虫と戦後まんがの主題](徳間書店, 2004)와 (사사키바라 고ササキバラゴウ와 함께 쓴) [교양으로서의 '망가 · 아니메'教養としての<まんが・アニメ>](講談社, 2001)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가 오늘날 일본만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표현 기법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전후前後로 하는 일본·만화의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순정만화'도 마찬가지여서 '24년조' 만화가들이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혁신적인 기법을 만들어냈던 것도, 길게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 테즈카 오사무가 [승리의 날까지]라는 습작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만화의 인물에게서 "죽을 수 있는 육체"를 발견했던 것과 연결되는 것이면서(나는 이 부분에 관해 두 편의 글로 블로그에 정리를 한 적이 있다. [오쓰카 에이지를 경유하여 테즈카 오사무의 전쟁 체험과 그의 만화를 생각함](1), (2)), 짧게는 정치의 시대가 지나간 1970년대라는 시기에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녀들이 처하고 있던 동시대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오쓰카는 '24년조' 만화가들을 이야기하면서 이 여성작가들이 단카이세대이자 전공투세대라는 것과 이 세대에는 [내셔널리즘과 젠더](이선이 옮김, 박종철출판사, 1999)의 저자로 유명한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위에 이야기한 오쓰카의 책들은 모두 일본만화에 관한 비평이면서 동시에 전후 일본에 관한 비평을 겸하고 있는 책들이지만, 그는 연합적군 사건과 서브컬처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그녀들'의 연합적군: 서브컬처와 전후민주주의「彼女たち」の連合赤軍―サブカルチャーと戦後民主主義](角川書店, 2001)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내가 즐겁게 보고 있는 '순정만화'들은 과거의 만화들과 어떻게 연결되면서 또한 만화가 연재되고 있는 21세기 일본의 풍경과 공기를 어떤 식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요즘은 [너에게 닿기를]을 보면서, 더 나아가 '순정만화'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
  • 프로필사진 NeoPool 무연의 만화 소개를 읽고 있자니 아직 내겐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로 남아있는 그 영역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네. 일본 서브컬쳐에 대한 모종의 거부감을 '오덕 ㄴㄴ해' 라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표현해오곤 했지만 나 역시 세대의 일원이라 그 영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물론 세대라는 규정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유치원-초등학교를 거쳐오는 동안 5시 30분부터 7시까지 30분 단위의 일본 아니메 시청이라던가 새로 막 나온 드래곤 볼 38권을 친구에게 빌려보는 것 따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세대, 중학교 이후에는 초기 인터넷 문화의 발달 등을 통해 만화로는 원피스, 강철의 연금술사 등등, 아니메로는 에반게리온 등등, 소설로는 은하영웅전설 등등, 게임으로는 코에이사 삼국지 시리즈, 대항해시대 시리즈, 야겜으로는 동급생2 등을 섭렵하는 것이 기본적 교양(?)에 해당하던 세대...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이 즐기던 것들을 언젠가 재조명해 살피겠다는 다짐은 하고 간다. 2013.06.03 11:15
  • 프로필사진 무한한 연습 이건 NeoPool의 댓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의외의 내용이다(^-^). 특히나 너의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이 즐기던 것들을 언젠가 재조명해 살피겠다는 다짐은 하고 간다" 라는 말은 기억해두고 싶네(^-^).

    나는 뭐랄까, 일본서브컬처나 이쪽이 아닌 다른 예술들 이를테면 음악과 영화와 소설같은 것도 모두 '역사'라는 개념으로 종합을 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물론 이럴 때 '역사'는 그저 과거를 회고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뭐 이럴 수도 있지만), 현재의 시간에서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즐기는 나와 그 작품들 자체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향유하고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는 것에 관한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역시 시간이 갈수록 '역사'라는 개념으로 더 모아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2013.06.04 02:03 신고
  • 프로필사진 NeoPool 역시, 진정한 역덕은 따로 있는 듯ㅋ 앞으로도 계속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2013.06.04 08:34
  • 프로필사진 무한한 연습 "진정한 역덕" ㅋㅋ 2013.06.04 11: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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