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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Egberto Gismonti의 [Dança Dos Escravos](ECM, 1988)에 수록된 [Alegrinho].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5월 9일부터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라는 주제로 여러 시대와 장르에 걸친 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이 기획전은 5월 26일까지 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모든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는 곳이고 또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맞추어 영화를 본 지 오래되었는데(당연히 나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도 201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 프로그램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시대와 장르의 영화를 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영화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축복이지만 영화 복원에 관한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서 복원한 영화들을 같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이 갖고 있는 매력일 것이다.

 

이 기획전이 열릴 때마다 내가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영화는 (영화사에 관한 관심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네마테크와 영화제가 아니면 극장에서 보기 어렵고 극장이 아닌 다른 경로로 볼 경우에는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은데,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복원 과정을 거친 프린트로 상영을 하거나 가능한 한 프린트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상영을 하기에 영화업계와 관련이 없는 나 같은 일반인들은 사실상 가장 좋은 조건으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화들은 블루레이나 DVD로 나오지 않은 영화가 많아서 어딘가에서 상영을 하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영화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이 기획전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소중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화 이름을 여기에 남겨보고 싶다(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화라고 해서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디지털로 복원된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연연풍진戀戀風塵](1986)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로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허우샤오시엔의 ‘청춘4부작’에서 [연연풍진]을 가장 좋아하기는 했지만 디지털로 복원된 이 영화를 보는 날은 스크린에 투사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더할 수 없이 행복했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기획전에서 디지털 복원으로 다시 볼 수 있었던 에드워드 양Edward Yang楊德昌의 [공포분자恐怖分子](1986)와 차이밍량蔡明亮의 [애정만세愛情萬歲](1994)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1924년에서 1952년까지 28년이라는 기간 동안 만들어졌던 일본의 초기애니메이션들을 볼 수 있었던 '일본국립필름센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근원' 섹션은 일본 근현대사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 (일본)역사와 (일본)애니메이션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의 [산의 소리山の音](1954), [부운浮雲](1955),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女が階段を上る時](1960) 그리고 [흐트러지다乱れる](1964)와 같이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와는 다르게 극장에서 거의 볼 기회가 없는 그의 1930년대 영화인 [너와 헤어져君と別れて](1933)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를 커다란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프리츠 랑Fritz Lang이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와의 만남 직후) 독일을 떠나기 이전에 만든 영화로 [마부제 박사의 유언Das Testament des Dr. Mabuse](1933)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두 편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엠M](1931)을 극장에서 다시 보았던 시간은 독일사에서 이야기하는 '독일의 특수한 길Deutscher Sonderweg'이라는 문제와 바이마르 시기를 다루는 독일영화사와의 관계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G. W. 파브스트Georg Wilhelm Pabst의 [판도라의 상자Die Büchse der Pandora](1929)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다른 영화인 [버림받은 자의 일기Tagebuch einer Verlorenen](1929)에서도 매혹적인 루이스 브룩스Louise Brooks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브룩스라는 배우의 존재를 ([판도라의 상자]에서 보여준 모습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작년까지 보아온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기억되는 때는 D. W.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의 두 편의 영화인 [흩어진 꽃잎Broken Blossoms](1919)과 [풍운의 고아Orphans of the Storm](1921)를 다시 볼 수 있었던 날이다(이 두 편의 영화는 피아니스트 야나시타 미에柳下美恵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볼 수 있었는데 그녀가 만들어내는 음악도 정말 좋았다). 그리피스와 그의 영화는 영화사를 다루는 책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1914)과 [인톨러런스Intolerance](1916)를 보는 것으로 그리피스의 영화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고 솔직히 그리피스의 다른 영화들을 우연한 기회에 보지 않았다면 나도 저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으로 그의 영화를 더 이상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피스의 멜로드라마에 속하는 영화를 보지 않은 채로 그의 영화에 관한 관심을 접어버리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흩어진 꽃잎]과 [풍운의 고아]는 반드시 보아야 하는 그리피스의 멜로드라마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릴리안 기쉬Lillian Gish(와 [풍운의 고아]에 함께 출연한 릴리안의 동생인 도로시 기쉬Dorothy Gish)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영화적 이미지일 것이다. 어쩌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의 내용을 견디기 힘들어 하거나 불편해 할 수도 있다. [흩어진 꽃잎]의 내용과 캐릭터 형상화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이 있고(아마도 [국가의 탄생] 다음으로 비판을 많이 받은 그리피스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혁명기가 영화의 배경인 [풍운의 고아]는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그리피스의 시각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편차가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프랑스혁명기에 있었던 이른바 '혁명적 폭력'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조르주 당통Georges Jacques Danton과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 M. I. de Robespierre를 '혁명적 폭력'에 관한 대조되는 두 명의 캐릭터로 형상화하는 방식은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상당할 정도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리피스의 영화만이 아니라 프랑스혁명기를 다룬 다른 영화로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영국여인과 공작L'anglaise et le duc](2001)을 작년에 DVD로 다시 볼 때에도 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를 프랑스혁명을 표현하는 영화의 내용 때문에 때때로 괴로운 심정을 느껴가며 보아야 했다). 그럼에도 [흩어진 꽃잎]과 [풍운의 고아]는 내용과 캐릭터 형상화의 불편함을 넘어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에 펼쳐지는 지옥 같은 멜로드라마의 구조에서 힘겹게 버티는 릴리안 기쉬의 모습, 더 정확하게는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그녀의 가련한 얼굴을 극장의 커다란 화면으로 보는 시간은 말 그대로 잊을 수 없는 영화적 체험을 하는 순간 그 자체일 것이다.

 

올해의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에서도 나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화를 중심으로 몇 편의 영화를 보려 하고 있다. 먼저 두 편의 영화에 가장 많은 관심이 간다. 파울 베게너Paul Wegener의 [프라하의 학생Der Student von Prag](1913)은 (독일영화사에 관한 여러 글들을 포함해)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From Caligari to Hitler](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와 한스 헬무트 프린츨러Hans Helmut Prinzler‧안톤 케스Anton Kes‧볼프강 야콥센Wolfgang Jacobsen이 엮은 [독일영화사1: 1890년대~1920년대](이준서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9)에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던 것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었다. 베게너의 [프라하의 학생]은 그의 다른 영화인 [골렘Der Golem](1915)과 함께 독일의 초기영화사를 다루는 글에서 종종 볼 수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최근까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기획전에서 [프라하의 학생]이 상영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반드시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며칠 전에는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도 했다. 베게너의 [프라하의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모두 오늘(금요일)부터 모레(일요일)에 걸쳐 보려 하는데, 그 중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Sergei M. Eisenstein의 [10월Oktyabr](1927)은 러시아혁명사에 관한 관심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라는 이유로도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사실 처음에 프로그램을 확인했을 때는 이번 달 17일이 '석가탄신일'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월차를 내서라도 [10월]을 보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쉬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기뻐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2007년에 러시아혁명 90주년 기념으로 한국서양사학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 하나인 한정숙의 ['세계를 뒤흔든 혁명'에 대한 열광, 증오, 성찰: 러시아 혁명 90년 - 해석의 역사](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2008)와 프레더릭 C. 코니Frederick C. Corney의 [10월 혁명: 볼셰비키 혁명의 기억과 형성](박원용 옮김, 책세상, 2008)을 참고삼아 러시아혁명에 관한 역사학적인 여러 담론 사이에서 에이젠슈타인의 [10월]에 드러나는 러시아혁명관을 생각해보고 싶다.

 

나에게는 저 두 편의 영화가 이번 기획전에서 가장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1954)는 그리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히치콕을 향한 존경심에 더해 이 영화의 3D 버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보려고 하고 있다. 랑의 [니벨룽겐: 지크프리트Die Nibelugen: Siegfried](1924)와 [니벨룽겐: 크림힐트의 복수Die Nibelugen: Kriemhilds Rache](1924)는 내가 예전에 이 영화들을 보았던 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욕심에 더해 이 두 편의 영화를 매개로 앞서 이야기한 '독일의 특수한 길'과 바이마르 시기를 또 다시 생각해 보려는 마음도 있다(여기에서 길게 이야기 할 수는 없으나 위에 이야기한 크라카우어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와 [독일영화사]에 수록된 케스의 바이마르 시기의 영화사에 관한 글도 넓은 의미에서는 '독일의 특수한 길'이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독일영화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크라카우어와 케스에게 바이마르 시기의 영화들은 나치의 제3제국을 예고하거나 그것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러한 관점은 한스-울리히 벨러Hans-Ulrich Wehler와 같은 독일사회사 역사가들이 바이마르 시기뿐만 아니라 1871년에 성립한 독일 제2제국을 나치의 독일 제3제국으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경로로 인식하는 것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나는 블로그에 ['독일의 특수한 길'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특수한 길'에 관한 약간의 메모를 남긴 적이 있다).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의 [동경이야기東京物語](1953)는 디지털로 복원된 이 영화의 영상에 관한 궁금함과 오즈에게 위안을 받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두 가지 이유로 이번에 다시 보려 하고 있다. 오즈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그의 영화가 갖고 있는 미학적 위대함과 그의 영화를 향한 빼어난 비평가들의 비평에 언제나 짓눌리듯이 영화를 보아온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해서 오즈의 영화를 볼 때도 일본근현대사 특히 아시아‧태평양전쟁과 그 이후의 역사를 강박적이다 싶을 만큼 연결해서 보려는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오즈의 [동경이야기]를 다시 볼 때는 좀 편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데 가능하다면 위안도 받아가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누가사 데이노스케衣笠貞之助의 [지옥문地獄門](1953)은 본래는 볼 생각이 없었는데 일본 국립필름센터의 35밀리 복원 프린트로 상영을 한다기에 다시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베를린: 대도시 교향곡Berlin: Die Sinfonie der Grossstadt](1927)은 이 영화를 이번에 처음으로 보는 것이면서 바이마르 시기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도 처음으로 보는 것이어서 [베를린: 대도시 교향곡]이 어떤 영화일지 무척 궁금해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7편의 영화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게 된다. 영화를 보려고 하는 날이 모두 휴일과 주말의 연속이어서 일을 하지 않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나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조금 과장하면, 영화제에 가는 기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전주와 부산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가는 것처럼 서울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며칠 동안 다양한 영화를 극장에서, 그것도 낮밤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영화제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월요일이 눈앞에 다가 온 것을 생각하며 일하기 싫어 죽겠다는 말이 당연하다는 듯이 입 안에 맴돌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단은 오늘 낮부터 이어질 3일이라는 시간동안 영화와 함께 즐겁게 보낼 생각만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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