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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예술/문화 장르에 음악이 있어서 때때로 책을 찾아보고는 한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나오는 책들도 있는데 최근에는 모리 요시타카毛利嘉孝가 엮은 [애프터 뮤지킹: 실천하는 음악アフターミュージッキングAfter Musiking 実践する音楽](東京藝術大学出版会, 2017)을 알게 되어 올해 안에는 읽어보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책임에도 어떤 친숙함과 반가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링크한 사이트에 간략하게 공개된 책 소개에 있는 것처럼) ‘애프터 뮤지킹: 실천하는 음악이라는 제목은 20세기 후반 서구 (클래식) 음악학의 진보적인 경향을 보여준 작업들, 그중에서도 크리스토퍼 스몰Christopher Small[뮤지킹 음악하기: 지금 음악회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조선우·최유준 옮김, 효형출판, 2004)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임에도 [애프터 뮤지킹]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는 했다.

 

1998년에 영어판이 나온 스몰의 [뮤지킹 음악하기]는 마르크스주의와 인류학의 논의를 받아들여 (이르게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대체로는) 90년대에 본격화한 서구 (클래식) 음악학의 특정한 조류를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책에 속한다(앞으로 이어지는 스몰의 책에 관한 부분은 블로그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몰은 서구 (클래식) 음악학에서 위대한 작곡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음악을 이야기하거나 음악을 청중으로부터 분리해 버리는 연주회 형태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등의 서구 (클래식) 음악문화를 교향곡 연주회장이라는 음악이 연주되는 장소를 매개 삼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스몰은 음악의 의미와 음악학의 범위를 좁은 의미의 연주와 감상이 아닌 연행演行perfomace에 기여하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포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할 것을 제안하면서 음악을 다양한 실천의 조합으로 탐구하고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렇게 정의하려 한다. '음악하다'to music'라는 말은 일정한 음악 공연에서 연주를 해서든, 듣기를 통해서든, 연습을 통해서든, 연주를 위한 재료를 제공해서든, 혹은 춤추기를 통해서든 각자가 가진 능력만큼 그 공연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때로 우리는 공연장 입구에서 표를 받는 사람의 행위나 피아노와 드럼 세트를 옮기는 일꾼들, 악기를 세팅하고 음향을 점검하는 매니저들, 공연이 끝나 모두 자리를 떠난 뒤 뒷정리를 하는 청소부들까지도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 역시 음악 공연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킹 음악하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쓰인 책으로, 책의 제목인 뮤지킹은 음악을 음악하기musiking’라는 일종의 동명사로 접근하기를 제안하는 스몰의 용어이기도 하다.

 

물론 작곡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 연구와 비평이더라도 기존의 방식과 결과를 반복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잔 맥클러리가 [페미닌 엔딩: 음악, 젠더, 섹슈얼리티](송화숙·이은진·윤인영 옮김, 예솔, 2018)에 수록된 [과잉과 틀: 광녀의 음악적 재현]이라는 글에서 몬테베르디의 [님프의 라멘트](1638)ㅡ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ㅡ쇤베르크의 [기대](1909)를 가로지르며 보여준 것처럼, 작곡가와 작품 중심의 분석이더라도 연구와 비평의 대상을 어떻게 구성하고 탐구하는가에 따라 서구 (클래식) 음악()에서의 재현방식을 비판적으로 재구축하는 훌륭한 작업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연행되는 데 있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저마다 기여 하는 존재들을 연구와 비평 단위에 더 많이 포괄하고 그것을 음악하기의 문제로 접근한다고 할 때 작곡가와 작품 중심의 접근은 일정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내 생각에, [스트리트의 사상: 거리를 되찾아라!](심정명 옮김, 그린비, 2013)에서 음악문화를 실천적인 문제로 보았던 모리는 분명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한국어로도 소개된 [스트리트의 사상]을 읽어보았다면, 모리가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대항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음악문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2000년대 이후의 일본에서 좌파적 실천이 나타나는 ()장소(이 표현은 모리가 직접 쓴 것이다)스트리트를 주목하면서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저항의 모습을 스트리트 사상으로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스트리트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70년대 말 내지는 80년대 초를 시작으로 책이 나온 시점인 2009년까지 일본에서 있었던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탐색한다. 여기에서 모리는 스트리트의 사상을 이루는 전사前史의 하나로 8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펑크 밴드인 EP-4의 퍼포먼스나 만화가 오카자키 쿄코岡崎京子[도쿄 걸즈 브라보東京ガールズブラボー](JICC出版局, 1993)에 담겨 있는 80년대 일본의 언더그라운드문화 등에서 접할 수 있는 음악문화를 거론하는 것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평가되지 않았던 음악과 관련된 문화를 이야기한다.

 

모리에게 있어 버블 시대로 돌입하기 이전에 나타난 언더그라운드 음악문화는, 21세기 일본 시위문화의 독특한 풍경의 하나이자 유동화하는 신체를 음악을 통해 대항 정치의 ()장소에 접속하게 만들어 주는 사운드 데모로 연결되는 의미있는 문화적 실천이자 역사이다. 그렇기에 음악문화는 [스트리트의 사상]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고찰대상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본의 문화 현상에 관한 논의는 일본문화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음악문화에 관한 논의에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다만 설명의 밀도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80년대에 관한 논의로만 한정하더라도 두 가지 정도는 바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신지영의 [마이너리티 코뮌: 동아시아 이방인이 듣고 쓰는 마을의 시공간](갈무리, 2016)처럼 자신이 방문하거나 함께했던 일본의 (저항) 공동체를 사려 깊게 고찰하고 기록하는 책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리의 경우처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문화를 오늘날의 저항문화와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전사의 하나로 언급하는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접근이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NHK 연속 TV 소설의 하나로 방영된 인기 드라마 [아마짱](2013)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80년대 음악문화를 추억의 소재로 삼을 때 보게 되는 전형적인 방식, 그러니까 마츠다 세이코나 오냥코클럽 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음악문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대상과 관점으로 음악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에서도 모리의 독특한 관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위대한 작곡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면서 음악과 관련된 퍼포먼스와 실천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트리트의 사상]에서 모리는 뮤지킹 음악하기의 관점을 이미 적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나에게 [애프터 뮤지킹: 실천하는 음악]은 이러한 선이해에 바탕하여 접근해 볼 수 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선이해는 선이해일 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완전하게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뮤지킹: 실천하는 음악이 아닌 애프터 뮤지킹: 실천하는 음악이 책의 제목이라는 데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몰의 연구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그 이후에 관한 고민도 담겨 있는 책임을 독자로 하여금 짐작하게 하는 제목. 여기에서 무대는 일본의 음악문화이다. 모리가 쓴 일종의 총론을 포함해 모두 9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3·11 동일본 대진재이후의 음악문화로부터 디지털 음악 파일의 역사와 라이브 하우스의 예약 매니저를 거쳐 애니메이션 음악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동시대 음악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글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공개된 목차로 판단한다면 역시 이 책도 다양한 음악적 실천을 포괄하는 음악하기로서의 음악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뮤지킹에 관한 어떤 애프터 뮤지킹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이야기되는 일본 음악문화의 어떤 이후에 관한 음악하기의 풍경이 담겨 있을까? 기대를 갖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덧붙임 1] 일본의 80년대 문화를 기존의 방식과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리의 [스트리트의 사상]은 나로 하여금 오타쿠 문화에 관한 특정한 논의를 생각해보게 했다. 사실 모리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스트리트 사상오타쿠 사상은 주목하는 문화가 다르고 정치의식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기에 교집합이 없지 않음에도 결국에는 대립하는 사상으로 구분한다. 그럼에도 나는, (주류가 아닌) 서로 다른 문화를 주목하면서도 그 문화가 갖고 있던 가능성과 좌절의 문제를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고 또한 책이 쓰인 시점에서 그들 작업을 역사적으로 돌아보는 출발점으로 80년대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오타쿠의 정신사: 1980년대론おたく精神史一九八年代論](朝日新聞社/講談社, 2007/2016)[스트리트의 사상]을 나란히 놓고 이 둘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오쓰카에 관해 조금 더 덧붙이면, [오타쿠의 정신사]에서 오타쿠オタク가 아닌 おたく로 표기한 것에서 오쓰카의 비평 대상으로의 오타쿠(의 정신사)’가 일종의 상급덕후론따위가 아님을 책의 제목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놓았다. 오쓰카의 태도와 관점은, “‘영상의 세기에 태어난 뉴타입Newtype으로서의 인종’”으로 영상문화에 관한 창의적이면서 진화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21세기 문화를 선도할 존재로 오타쿠オタク를 명명한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오타쿠학 입문オタク学入門](太田出版, 1996)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포함하는 일본 서브컬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1988년부터 1989년에 걸쳐 미야자키 츠토무가 저지른 여아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 이후 기분 나쁘고 혐오스러운 존재로서의 오타쿠라는 담론을 어떻게 성찰하여 오타쿠おたく/オタク로서의 자기 근거를 재구축 했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덧붙임 2] 링크한 음악은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山下洋輔トリオ와 여러 예술인들이 참여한 프리 재즈·무용 음악 앨범인 [아라시](Frasco, 1977)이다(어떤 분이 유튜브에 풀앨범을 올려놓았다!). 와카마츠 코지(와 아다치 마사오)의 영화인 [천사의 황홀天使恍惚](1972)로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를 알게 된 이래, 나는 이 트리오의 앨범은 물론이거니와 트리오 해체 이후의 멤버들의 작업도 찾아 듣고는 했다. 특히 사카타 아키라坂田明의 음악을 좋아해서 지난 3월에는, 최근 들어 가장 자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치카모라치 그리고 70년대 일본 재즈의 또 다른 걸작의 하나인 [아말가메이션/황홀한 쇼와 겐로쿠アマルガメイション/恍惚昭和元禄](PHOENIX RECORDS, 1971)의 음악가인 사토 마사히코와 함께 한 그의 [Proton Pump](Family Vineyard, 2018)를 열광하면서 듣기도 했다(여기에 더해 사카타의 [Proton Pump]와 비슷한 시기에 들었던 와다다 레오 스미스의 [Solo Reflections and Meditations on Monk](TUM Records Oy, 2017)를 번갈아 들으며 극과 극의 음악체험을 하는 기쁨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일본의 전위적인 (언더그라운드) 음악문화를 이야기할 때 나에게는 어떤 음악문화보다도 60-70년대의 재즈가 먼저 떠오르는데, 그중에서도 야마시타 요스케 트리오의 사운드가 담겨 있는 [아라시]는 들을 때마다 자극을 받고 꼭 그만큼 다시 돌아가게 되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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