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문ㆍ예술계열의 독서 모임에서 마이클 채넌Michael Chanan의 [음악 녹음의 역사: 에디슨에서 월드 뮤직까지Repeated Takes: A Short History of Recording and its Effects on Music](2005)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수년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었고 언제든 다시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책이기도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읽을 수 있었는데, 사실 나는 채넌의 책을 좋아하고 또한 그의 책에서 배움을 얻은 독자에 속한다. 독서 모임에서 친구들과 읽은 [음악 녹음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다른 책들인 [무지카 프라티카: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서양 음악의 사회적 관습](2001)과 [헨델에서 헨드릭스까지](2008) 같은 책들에서도 즐거움과 배움을 얻었으니 말이다. 각각의 영어판들이 모두 1990년대에 나와서 디지털 환경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재)구축된 21세기 음악문화를 거의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 약점으로 보일 수 있는 책들이기는 하지만, 채넌의 책에는 그런 약점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음악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관심을 두고 있는 음악을 더 잘 향유하고 싶을 때 그것을 가능하게하기 위한 선택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일반적으로 많이 선택하는 경로의 하나는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를 중심으로 짜여 진 경로를 통과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두 개의 음악 장르인) 클래식과 재즈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를 중심으로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할 정도로 유효한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음악은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여러 지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더 잘 향유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관한 다양한 지점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광범위한 음악 문화를 탐구할 필요가 생긴다.


채넌의 [음악 녹음의 역사]는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를 중심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 경로를 열어주는 책이다.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 녹음의 역사]의 주된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있어서 작곡가와 연주가에 종속된 것으로 음악을 규정한다거나 작곡가와 작품의 계보를 만들어 예술의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읽을 수 없다. 또한 책의 제목이 '음악 녹음의 역사'이기에 녹음 기술을 발명한 천재발명가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인 책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책은 발명가의 분투와 업적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채넌의 목표는, 음악을 예술가에 귀속시키거나 녹음기술을 발명가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서, 기술과 산업의 문제를 아우르는 '음악 녹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


책의 영어제목인 'Repeated Takes' 자체가 녹음 기술의 발명 이전에는 나타날 수 없는 제목이지만, '레코드문화'로부터 시작하여 '전기 녹음'과 '마이크와 음악 해석'을 (포함하는 7개의 챕터를) 거쳐 '다국적 기업과 '월드 뮤직''으로 마무리되는 챕터의 제목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음악의 범위를 독자로 하여금 짐작케 한다. 보통 음악 녹음에 관한 책이라고 하면 녹음 작업에 관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의 나열로 채워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음악 녹음의 역사]는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로 광범위하다. 녹음 기술의 발명을 기보법記譜法의 시작에 비견하거나 어쩌면 그보다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면, 음악 녹음을 다루는 책에서 음악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음악 녹음의 역사]는, 녹음 기술의 여파로 음악에 가해진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크와 라디오로 인하여 나타난 음악 해석의 여러 문제들과 달라진 청취(환경)에 관한 이야기들, 반복재생이 가능한 음반의 탄생과 음반 산업의 성립에 따른 음악 문화의 변화 등, 기술과 산업의 복합체로서의 20세기 음악사를 한 권의 책 안에 펼쳐 보인다.


음악에 관한 이러한 관점, 다시 말해 작곡가ㆍ작품ㆍ연주가를 중심에 두는 음악사적 서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해나가는 관점은 1990년대를 전후로 영미권 음악학에서 나타났던 (마르크스주의나 인류학 등의 영향을 받은) 연구경향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스몰이 [뮤지킹 음악하기](2004)에서 음악이라는 것을 동(명)사로서의 '음악하다'to music 내지는 '음악하기'musicking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음악의 의미와 음악학의 범위를 연행演行perfomance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나는 이렇게 정의하려 한다. '음악하다'to music'라는 말은 일정한 음악 공연에서 연주를 해서든, 듣기를 통해서든, 연습을 통해서든, 연주를 위한 재료를 제공해서든, 혹은 춤추기를 통해서든 각자가 가진 능력만큼 그 공연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때로 우리는 공연장 입구에서 표를 받는 사람의 행위나 피아노와 드럼 세트를 옮기는 일꾼들, 악기를 세팅하고 음향을 점검하는 매니저들, 공연이 끝나 모두 자리를 떠난 뒤 뒷정리를 하는 청소부들까지도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 역시 음악 공연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영미권 음악학에서는 이른바 '위대한 작곡가'라는 특정한 인격체에 음악을 귀속시키고 그들을 중심으로 음악을 연구하는 데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 음악(학)을 개방하고 접속시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채넌의 책도 이러한 시기에 나온 기억할 만한 성과물이었다. 사실 채넌은 [음악 녹음의 역사] 이전에 나온 [무지카 프라티카]에서 이미 [음악 녹음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질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하기도 했다. 서양 음악의 사회적 관습을 탐구할 목적으로 쓰여 진 이 책에서 기보법이나 녹음 기술처럼 음악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도구에 관한 탐구와 함께 이러한 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다루기도 했다. 또한 [음악 녹음의 역사] 이후에 나온 책인 [헨델에서 헨드릭스까지]의 경우, 제목만 보면 음악가라는 인격체 자체에 관심을 갖는 연구로 보이지만 이 책에서도 채넌의 진정한 관심은 "The Composer in the Public Sphere"라는 영어판의 부제처럼 작곡가 자체라기보다는 공론장에서의 작곡가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채넌의 [음악 녹음의 역사]는 1990년대를 전후로 하는 영미권 음악학의 새로운 경향과 연관이 있었는데, 이러한 연구는 '위대한 작곡가'들과 그들 작품의 계보를 그리지 않더라도 진공상태에 있는 음악이 아닌 (특정한) 역사 안에서 존재하는 음악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당연하게도 음악은 역사 안에서 형성된 음악 문화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러한 지점을 염두에 두면서 음악을 들어 나간다는 관점은 의외로 자주 놓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듣는 음악의 상당량을 실제의 공연보다는 녹음 기술의 매개로 접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음악 체험을 가능하게 한 음악 녹음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감상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상상의 영역에 한정해서 이야기하다면, 사운드가 일정한 형태로 보존되었다가 다시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상상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팡타그뤼엘 제4서](1552)에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얼었다가 녹은 여러 가지 말소리"에 관한 이야기로 소급할 수 있다. 그러나 녹음을 매개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상상을 단순히 현실화시키는 것만으로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기술이 발명되고 (표준화된) 상품화가 진행되어 일정한 유통 체계를 거쳐 청자에게 전달되는 방향으로 진행된 역사적 현상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음악 녹음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상황을 섬세하게 고려한 고찰 없이 오늘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 녹음의 역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는, 특히나 음반 산업에 관한 내용은 이전에 나왔던 음악에 관한 다른 책에서는, 적어도 종합적인 관점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음악 산업과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생 듣는 대부분의 음악이 녹음 기술을 거쳐 간 것이며 이 책의 영어판이 나온 1995년에는 이미 CD조차 미래의 매체가 아니었음에도, 음악 녹음과 이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관한 종합적인 관점의 책은 채넌이 "이상한 간극"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에서 보이는 것처럼 [음악 녹음의 역사] 이전에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물론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하고 (재)구축된 오늘날의 음악 문화를 생각하면 채넌의 책은 디지털 음악 문화에 제대로 입회하지 못한 연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면,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 음악 문화의 물적 토대와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는 책이 채넌의 [음악 녹음의 역사]임을 알게 된다. 에디슨이 발명한 '말하는 석박'talking tin foil으로부터 CD에 이르는 음악 녹음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오늘날의 음악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역사에 다름 아닌데, 이러한 역사에 접근하는 데 있어 채넌만큼 훌륭한 저자를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ㅡ 채넌의 [음악 녹음의 역사]를 다시 읽고는 간략하게나마 정리를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 두 권의 다른 책을 뒤이어 (다시) 읽었다. 존 스웨드John Szwed의 [마일즈 데이비스: 거친 영혼의 속삭임So What: The Life of Miles Davis](2005. 이 책의 첫 한국어판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왔고 출판사와 장정을 바꾸어 2015년에 그책에서 다시 나왔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을유문화사판이다)와 리처드 오즈본Richard Osborne의 [카라얀 평전Herbert von Karajan: A Life in Music](2012)의 두 번째 권. [마일즈 데이비스] 평전은 이 책의 번역본이 처음 나왔을 때 읽고는 12년 만에 다시 읽었고 [카라얀 평전]은 예전에 첫 번째 권만 읽고 말았던 것을 이번에 이어서 읽었다. 채넌의 책과 함께 읽을 만한 책들이 저 두 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라는 두 음악가의 일생을 다루는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음악 녹음의 역사]와의 직접적인 연계를 생각한다면 음악가의 평전을 읽는 것보다는, 음악 녹음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다룬다거나 음반 산업에 집중하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어울리는 후속독서였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음악가라는 인격체를 중심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음악 녹음의 역사]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음악에 관한 생각을 이어가고 싶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카라얀 평전] 모두 이 두 명의 음악가를 다룬 것으로는 결정판의 역할을 하는 책들이고 그만큼 유익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얼마 전에 [카라얀 평전]을 다 읽고는 첫 번째 권을 읽었을 당시에 곧바로 두 번째 권으로 돌입하지 않았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었다), 무엇보다 마일즈와 카라얀은 '음악 녹음의 역사'에서 인상적인 위치에 있는 음악가들에 속한다. 카라얀은, 그보다 먼저 녹음 기술을 접한 클래식음악계의 (지휘자) 선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동시대에 속하는 음악가들이나 후배 음악가들과 비교해도, 음악 녹음과 음반 산업을 생각할 때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름의 하나일 것이다. SPㆍLPㆍCD를 관통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지휘로 음악을 녹음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적극적인 인물이었으며 도이치 그라모폰ㆍ데카ㆍ워너를 중심으로 남긴 엄청난 량의 음반과 그 음반들에서 들을 수 있는 인상적인 연주들이 음악 녹음을 향한 카라얀의 지대한 관심을 들려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약간의 정리를 해보고 싶은 음악가는 카라얀이 아닌 마일즈 데이비스이다. 더 정확하게는 마일즈의 특정한 음반과 관련한 이야기라고 해야겠지만, 어찌 되었든 [음악 녹음의 역사]를 읽은 후에 붙잡았던 [마일즈 데비이스]와 [카라얀 평전] 중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앞의 책이었다.


'음악 녹음의 역사'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해 볼 마일즈의 음반은 컬럼비아에서 각각 1969년과 1970년에 나온 [인 어 사일런트 웨이In A Silent Way]와 [비치스 브루Bitches Brew]이다. 말 그대로 위대한 작품들. 마일즈의 음악적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 웨인 쇼터ㆍ칙 코리아ㆍ허비 행콕ㆍ존 맥러플린ㆍ토니 윌리엄스ㆍ잭 드조네ㆍ조 자비눌ㆍ데이브 홀랜드 등이 함께한 것으로도 기념비적인 음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그런데 이 음반들은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Sketches of Spain](1959)부터 15년 동안 마일즈의 음악 녹음에 함께 했던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의 존재로도 함께 기억되어야 하는 음반들이다. 왜냐하면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는 최상급의 연주로 만들어낸 음반이면서, 유능한 프로듀서이자 훌륭한 음악적 감식안의 소유자로서 녹음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던 마세로와 일종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음반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의 마일즈는 이즈음 듣게 된 록음악의 전자음악적인 요소에 이끌리고 있었다. 이것은 유행에 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었으며, 비밥 퀸텟 사운드에서 벗어나 전자악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마일즈의 열망과 긴밀하게 연결된 관심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음악 세계를 모색하려는 마일즈에게 녹음과 편집이라는 과정은 그의 음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일즈는 60년대 중반 이전에도 녹음 기술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고 [마일즈 어헤드Miles Ahead](1957)에서 오케스트라 반주에 자신의 연주를 덧입히기 위한 오버더빙을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한 바 있다. 그리고 마세로와 함께 했던 일련의 녹음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녹음과 편집은 마일즈의 음악에 혁신적인 사운드를 부여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마세로와의 작업은 연주를 담아내는 과정으로서의 녹음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과정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들려준 사례라고 할 만 한데, 이 한복판에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전자음악적인 요소에 이끌렸던 마일즈의 사운드를 이해하려면 마세로와 함께한 녹음과 편집 과정을 알아두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스웨드의 [마일즈 데이비스]에 따르면 60년대 중반 이후 마일즈 음악에서의 중요한 혁신은 사운드의 편집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녹음된 사운드를 편집한다는 것은 에이젠쉬테인이나 지가 베르토프와 같은 러시아 영화감독들의 사운드 실험을 포괄하는 영화에서의 편집기법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1950년대가 되면 현대음악에서도 중요한 탐구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피에르 셰페르의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이나, 셰페르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으며 실험물리학자인 베르너 마이어-에플러와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인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전자음악의 (비판적) 계승자이기도 했던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작업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자연계의 사운드나 악기의 사운드를 기계적/전기적인 변화를 가하고 배치를 달리하여 전자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에게는 중요하게 활용된 음악제작기법의 하나였고, 마일즈의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에서의 작업도 이러한 현대음악과의 관계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줄리어드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학 시절에 이미 숙련된 사운드 엔지니어의 면모를 보였으며 에드가 바레즈와 교류가 있기도 했던 마세로는 음악제작과정에서 녹음된 사운드를 편집하는 과정의 의미를 매우 잘 알고 있던 프로듀서였다(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프랑스와 독일만큼은 아니더라도 1950년대의 밀턴 배비트로부터 시작하는 미국 아방가르드 전자음악의 역사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60년대 중반 이후의 녹음 과정에서 마일즈와 그의 음악 동료들이 보여준 녹음 과정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특이한 풍경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연주할 곡을 좀 더 완벽한 연주를 만들기 위해 테이크를 나누어 반복 녹음하는 방식이 아니라,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작업 종료를 선언하고 나올 때까지 녹음 스튜디오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운드는 음악 연주로부터 쓸데없는 잡담에 이르기까지 모두 녹음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 테이크의 더미에서 잘 된 연주를 선택해 음반에 수록하는 선곡과정이 아예 불가능하고는 했고, 이러한 녹음 사운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음악 앨범 형태를 갖출 수 있으려면 녹음 테이프 전체를 반복해 들어가며 일정한 음악적 이디엄에 따라 사운드를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멀티 트랙의 발명에 따라 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튜디오에서의 녹음은 사실상 그 안에서 울리는 모든 소리를 (여러 단계에서) 빠짐없이 녹음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렇게 녹음된 사운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조작하는 편집 기법을 활용하여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마세로는 사실상의 공동작곡가였다고 할 정도로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발군의 역량을 발휘했다.


어떤 의미에서 '음악 녹음의 역사'는 새로운 음악의 탄생을 가져온 역사이기도 했다. 기존에는 연주회장에서도 듣기 어려웠던 여러 지역과 문화권의 음악을 음반이라는 매체를 통해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음악 녹음과 관련된 기술이 여러 방면의 기술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주형태를 가능하게 하거나 장르 자체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마일즈와 마세로의 공동 작업이라 할 수 있을 저 두 음반도 '음악 녹음의 역사'와 관련된 20세기의 특정한 역사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풍경에 속하는 작품들이었으며 음반 산업이 중요한 매체로 인정되었던 시기에 출현했던 음반들이었다. 내가 [음악 녹음의 역사]를 읽은 후에 [마일즈 데이비스](와 [카라얀 평전])을 이어서 읽은 중요한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채넌의 책에 이어서 읽을 것이라면, 음악가 평전으로 쓰여진 것보다는 기술이나 산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을 보는 것이 더 적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웨드의 [마일즈 데이비스]에서 담겨 있는 마일즈에 관한 역사, 그 중에서도 마세로와의 빛나는 공동 작업으로 기억될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가 속한 역사는, 음악을 녹음한다는 과정이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창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더할 수 없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고